공이란
공 (空)
※ 불교국가인 티벳의 14대 달라이라마는 수행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空에 대한 공부로 공에 대한 개념과 이해를 해야 하며 나쁜 마음이든 자비의 마음이든 마음이 남아 있으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불교의 근본은 사성제(苦,集,滅,道)로 集의 해결 방법이 道이며 道(즉 八正道)의 핵심이 空이라 함
★ 공의 기본개념
우리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실재 하다고 생각(현상=본질)하고 보고 있지만 보이는 존재가 실재로는 없는 허상으로, 즉 독립된 고정된 실체가 없고 인연의 법칙에 의한 변화와 관계만이 존재한다는 것으로 다시 말해 실체가 없는 조건과 원인들이 모여 연기한다는 것임
무아라고 하여,
현재의 나, 현상적인 존재로서
이렇게 활동하고 있는 나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정 불변하는 실체적인 나’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인연법으로 이루어진 일체 제법은
항상하지 않으므로 무상하고, 고정된 실체가 없으므로 무아이며,
인연따라 생주이멸, 생노병사 하므로 연기이고,
그러므로 있다 없다 할 수 없어 공이며 중도인 것이다.
‘공’은 아무 것도 없다는 개념이 아니라
유(有)와 무(無)를 초월한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 개념,
이것이 바로 공(空)인 것이다.
즉, 인과 연에 의해서 모였으므로 인과 연이 다하면 반드시 사라진다는 연기의 법칙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이 곧 연기’임을 말한다
설명 1)
우주의 근본법칙인 연기법을 발견하신 석존은 그것을 삼법인三法印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셨다. 그러나 언어는 생각을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이자 또한 생각을 오해시키는 유일한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허상이며 실재하는 것은 변화뿐이다’라는 뜻의 삼법인三法印의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는다’로, ‘우리가 실재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허상이며 실재하는 것은 관계뿐이다’는 뜻의 제법무아諸法無我를 ’현상세계에서 나는 없다‘로, ’완전연소의 삶만이 추구하여야 할 삶이다‘는 뜻의 열반적정涅槃寂靜을’ ‘완전 연소는 고요하다’로 그 내용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 ‘아무 것도 없다’는 식으로 이해하여 무無라는 생각에 빠져 허무주의虛無主義로 빠져 들어가는 오류가 발생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하여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라는 부파가 삼세실유 항유법체三世實有 恒有法體를 주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잘못 이해하면 절대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연기법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말이 될 수 있기에 경량부經量部가 크게 반발하여 불교계에서는 유有와 무無의 논쟁이 발생하였다.
이때 연기법을 보다 정확한 언어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가 일어났는데, 이것이 ‘공空’의 이론이다. 즉 연기는 ‘유(有=있다)’로도 ‘무(無=없다)’로도 표현할 수 없기에 ‘공(空=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공의 이론은 대승불교경전인『반야경般若經』을 성립시키며 체계화되어지다 용수龍樹보살에 와서 한층 발전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연기법을 바르게 설명하고 도입되어진 개념인 공이 연기법을 설명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부정否定의 공이고, 둘은 긍정肯定의 공이다.
부정의 공을 가장 잘 사용한 이가 용수보살龍樹菩薩인데 용수보살의 자티(jati) 논법은 모든 것을 부정하여 나감으로써 실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와 관계가 만들어낸 허상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그리고 긍정의 공은『유마경維摩經』에 등장하는 유마거사維摩居士의 공인데, 이것은 모든 것을 긍정함으로써 실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와 관계가 만들어낸 허상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어쨌든 공의 교설은 삼법인처럼 연기법을 표현하는 개념에 불과하며, 연기법이란 ‘우리가 실재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변화와 관계가 지어낸 거짓된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은 그것이 실재한다고 착각하여 변화와 관계를 거역하여 불완전 연소의 삶을 살게 되는데, 불완전 연소의 삶 역시 변화와 관계가 만들어낸 허상이기에 모든 중생들은 본래의 삶인 완전연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연기법은 진리이며, 이 진리가 바로 불교의 부처님이기에 불교에서는 그것을 법신불法身佛이라 한다. (출처 : 서진 스님의 반야심경 강좌 내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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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2)
[공(空)] 공사상은 우주의 실상인가, 허무주의인가?
공(空)은 비어 있음, 무(無),공적(空寂),공정(空淨)이라고 번역한다. '공'은 허무나 멸무(滅無)와는 다른 실상(實相)의 의미이다.
공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근본 교리이다. 현상계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생멸하는 존재이며, 고정 불변하는 자성이 없다.
사물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힌 상호의존적인 것이기 때문에 무아이며, 무아이기 때문에 공인 것이다.
이때의 공은 고락(苦樂)과 유무(有無)의 양극단을 떠난 중도이며, 이것이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이다.
공사상은 인간의 그릇된 입장을 파사(破邪)하여 현정(顯正)하는 데 있는 것이므로 어떤 사람이 현상계에 집착하면 그것이 공이라는 것을 가르치며, 또 열반에 집착하면 열반 또한 공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사람들이 집착하는 가지가지 대상이 본질적으로 공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원시불교 경전에서는 존재를 5온,12처,18계 등으로 분석함으로써 아(我)의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고 있으며, 공과 연기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또 부파불교에 오면 설일체유부에서는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성실론에서는 아공법공(我空法空)을 주장한다.
초기 대승경전인 반야경은 원시불교의 연기관과 부파불교의 공관을 총합하여 일체제법이 공이라고 주장한다.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관념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온갖 집착의 대상이 공함을 밝히고, 마침내는 그 공도 또한 공임을 설한다.
이는 모든 사물이 공하다고 하는 관념에 집착하여 허무주의적인 경향에 빠져 버리는 공병(空病)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설이다. 이러한 교설은 대립적인 상대 의식이 공하다는 것일 뿐 아니라, 상대를 넘어선 절대 또한 공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용수는 중론에서 ‘모든 인연에 따라 생겨지는 현상을 공이라하고, 또한 이것을 가명(假名)이라 하고, 또 이것을 중도라고 칭한다. 일찍이 하나의 현상도 인연에 따르지 않고 생한 것은 없으니, 이런 고로 일체 현상은 공 아닌 것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공은 객관적 세계를 부정하는 절대무(絶對無)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특히 반야심경에서는 물질적인 현상과 공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떠날 수 없는 상관관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사물의 본질이 공으로 파악된다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공은 그 파악되는 사물을 떠나서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체가 공이라고 관하는 것을 공관(空觀)이라 한다.
공은 허무가 아니고, 공을 관하는 것은 진실한 가치의 발견이므로, 진공(眞空) 그대로가 묘유(妙有)라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공을 허무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악취공 (惡取空)'이라 한다.
(출처: 포교사단 박영동 교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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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3)
공(空)은 모든 만법(萬法)의 본성(本性)이라고 합니다.
또한, 공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고정된 실체(實體)나 자성(自性)이 없다'는 말입니다.
존재가 본래 공함으로, 즉 자성이 없기 때문에 모든 법은 서로 연기(緣起)하여 생(生)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시간적으로 무상(無常)하고 공간적으로 무아(無我)여서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공이란 아함경의 무아(無我)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지만, 그보다 더 철저히 발전된 개념입니다. 공은 불이(不二) 즉 이원적 대립의 극복으로 요약됩니다.
반야심경에서도 공을 부증불감 (不增不減)으로 설명합니다. 부증불감은 증가와 감소 모두 동시에 부정하는 것으로 이와 같이 대립되는 개념 전체를 동시에 부정함으로써 공은 새로운 차원의 철학으로 전개됩니다.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 절대평등의 세계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공이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가 아니라 현재 우리 눈앞에 있는 존재를 여실하게 보는 입장에서 바로 공인 것입니다. 반야심경에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다’ 즉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고 설하고 있고, 진공묘유(眞空妙有),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말도 공의 이러한 오묘한 이치를 나타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공이라 하면 사물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 즉 허무주의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간혹, 수행자들 중에도 공을 이렇게 허무주의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단멸공(斷滅空)'내지 '침공체적(沈空滯寂)' 또는 '악취공(惡取空)'이라고 합니다.
이 공 도리는 중요하고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부처님은 공을 허공과 같다고 비유로써 말씀하십니다. 허공은 볼 수 없고 잡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공의 실상도 그렇습니다.
공의 종류는 크게는 18공까지 나누어집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18공(十八空)은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 제3권 및 대집경(大集經)제54권에 나오는 말이다.
1) 내공(內空) : 육근(六根), 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는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결국 공(空)이라는 점,
2) 외공(外空) : 육근의 대상인 육경(六境), 즉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은 실체가 없다는 것,
3) 내외공(內外空) : 육근이 내공, 육경이 외공인데 모든 사람이 이 내외의 법에 집착(執着)하나 실제는 내(內)인 인아(人我)도 외(外)인 법아(法我)도 없다는 것,
4) 공공(空空) : 육근․육경이 실체도 자성(自性)도 없는 공이므로, 이 공 역시 집착의 대상이 안 된다는 것,
5) 대공(大空) : 만유(萬有)가 4대 원소,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주장도 가설, 즉 공이라는 것,
6) 제일의공(第一義空) : 대승불교에서는 열반으로 해석하며, 진실공(眞實空)․진경공(眞境空)이라고도 하는데, 진실도 공이요 진경도 공이라는 것,
7) 유위공(有爲空) : 인연 또는 인위적으로 된 모든 현상이 헛되다는 것,
8) 무위공(無爲空) : 모든 자연의 실체, 즉 무위법도 공이라는 것,
9) 필경공(畢竟空) : 상대적인 공을 또 공이라고 하는 절대부정의 공, 필경은 일체가 공하다는 것,
10) 무시공(無始空) : 모든 사물이 인과(因果)의 법칙에서 보면 시작이 없는데, 그러한 생각 또한 공이라는 것,
11) 산공(散空) : 이러한 공의 사상 역시 안개처럼 흩어져 공하다는 것,
12) 성공(性空) : 모든 사물의 본성 자체가 공하므로 그 실상도 공이라는 것,
13) 자상공(自相空) : 제상(諸相)에 일반상․특수상이 있지만 어떤 견지에서 보나 어느 방향에서 보나 그 실상은 공이라는 것,
14) 제법공(諸法空) : 물․심(物心)의 제법(諸法)이 유한(有限)하므로 실체는 공이라는 것,
15) 불가득공(不可得空) : 만물의 실상이 공이므로 아무리 많이 얻어 보아도 결국 공이라는 것,
16) 무법공(無法空) : 만법(萬法)이 소멸하는데, 그 소멸 자체도 공하다는 것,
17) 유법공(有法空) : 유법 즉 만상(萬象)의 자성이 공이라는 것,
18)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 이미 사라진 과거의 모든 것, 즉 무법과 현재에 있는, 또 앞으로 생겨나는 모든 것, 유법이 다 공이라는 것이다.
십팔공 외에 12, 14, 19, 20공 등을 말한 경우도 있다.
공을 다시 크게 3가지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공(我空)은 연기에 의해 지수화풍 사대와 오온이 임시적으로 결합된 가짜 나가 실재한다고 하는 아집(我執)을 부정하는 것이며, 법공(法空)은 객관세계의 일체법이 공함을 모르고 여기에 집착하는 법집(法執)을 깨뜨리는 것이며, 구공(俱空)은 이러한 아공, 법공 마저도 버리어 비로소 제법의 본성에 계합함을 말합니다.
(출처: 조계사청년회 교리책자 '여시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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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4)
공이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숫자로 비유를 해보죠 !
12345...9 가 있습니다 또 0 도 있습니다
8에서 9를 한번 나누어볼까요? 0.888...9이렇게 나올 겁니다 거기서 또 나누면
수는 더 작아집니다 그리고 끝내는 0에 가까운 숫자가 나오고 0이 됩니다 !
숫자 0은 존재하는 숫자임과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숫자입니다
0이니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 수를 나누었듯이 실체로 드러나니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空입니다 !
여기서 색과 공을 붙여보죠 !
1234..9는 色(물질현상) 0은 空(공) 입니다 물질은 쪼개다보면 공만 남습니다
고로 색즉공 이며 색은 공이니 공은 색입니다
이렇게 色과 空 이 둘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왜 그런가 ... 우리가 바다를 부를 때 어떤 주체를 보고 바다라고 부릅니까 ?
쉽게 바로 거대한 물을 보고 바다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
그런데 여기서 파도를 빼버릴까요? 그럼 뭡니까? 바다일까요? 아니 물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겁니다 즉 파도가 있어 바다이며 바다가 없으면 파도도 없나니...
이런 비유말고도 수도 없습니다 ... 공간의 단어는 텅텅빈空 사이間 空間입니다
너와 나사이 물질과 물질사이 ! 공을 그냥 無라고 해버리면 ...
공간사이에 머무르고 있는 너와 나도 없어지는 겁니다 ... 이처럼 없는 것이지만
있는 것이고
실체가 없는 空間이라는 空에서부터 너와 나 또는 물질 色이 있는 겁니다
이렇게 지금 님의 눈으로 지금 보고 있는 겁니다 空이란걸요 ...^ ^
님이 보는 것 만지는 것 실체는 있습니다 허나 ... 그것은 空에서 나왔으므로
즉 공이 되는 겁니다 즉 공이 되면 실체는 사라집니다. 왜냐 보이든 만져지든 간에
나를 감싸는 것 물질을 감싸는 것은 空이므로요 ...
바람과(인연과)만나서 생기는 파도(色) ... 그것은 우리가 보는 色(물질현상)의 세상과같죠 ...하지만 표면의 파도와 바다의 깊은 곳은 언제나 일체입니다
엄청나게 큰 물질이면 무엇하겠습니까? 거기다 곱하기 0 (空)을 해버리면 만물이
공인 것을.... (출처 : 네이버)